힘들었던 여정이 끝났다. 그리고 서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본 수많은 풍경과 사람과 그리고 하늘들. “과연 그 중 무엇이 ‘샹그리라’일까?”며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누구도 무엇이 샹그리라라고 단언하지 못한 채 여행을 마쳐야만 했다. 어쩌면 샹그리라는 우리가 살아오는 내내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을 뿐…
두려운 여행의 시작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가 중국 청두에 도착했다. 성도에서부터 이번 샹그리라 여행은 시작된다. 저녁 청두에 도착 후 장족 식 저녁식사 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내일부터 시작될 여행이 기대되는 한편 두렵기도 하다. 고산에 오른 적은 있지만 내일 5일 간을 차를 타고 고원지대를 여행해야 하는 이번 여행을 버틸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내심 크다.
다음날 이른 아침, 호텔 앞에는 캠핑카와 짚차가 나란히 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짐을 싣는 동안 청두 시내의 아침 풍경을 잠시 감상한다. “어~ 참 깨끗한 중국이네”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본 중국의 아침 풍경보다는 훨씬 더 깨끗하고 신선한 느낌이다. 중국의 서부 끝자락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난다. 가보자! 이제 출발이다.
한 2시간쯤을 달리자 ‘야안’에 도착했다. 야안은 티벳으로 통하는 천장공로와 윈난(운남)을 향하는 도로가 만나는 요충지이자 과거 차 재배지로서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도착하자 옛 모습 그대로 차를 만들어 운반하는 모습을 커다란 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잠시 이곳에 멈춰서서 예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 뒤 다시 차를 달려 ‘칸딩’을 향한다.
터널을 지나면 티벳이 보인다
칸딩에 도달하기 전 해발고도 2020m에 있는 길이 4718m의 얼량산 터널(이량산)을 지나야 한다. 이 터널을 지나면서 이전과는 다른 본격적인 동티벳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티벳고원의 동쪽 끝자락에서도 티벳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그 기세를 잃지 않은 채 도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칸즈장족자치구가 시작된다. 칸즈장족차지구는 중국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드디어 티벳의 땅에 도착했다.
우리가 찾아가는 칸딩(康定)은 해발고도 2600m에 자리 잡은 장족(티벳족)의 도시로서 중국이 티벳을 침략하기 전까지는 티벳과 중국의 국경 도시로서 역할을 하던 곳이다. 쓰촨성(사천성) 서부 칸즈장족자치구의 주도로서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한 곳이다. 티벳족(중국에서는 장족이라고 표현한다)에는 여러 계통의 부류가 있는데 신체골격이 유난히 건장하고 풍류가 많은 부족 중 하나가 바로 칸즈장족이다.
특히 칸딩은 중국이 의도적으로 한족문화를 투입해 기존의 티벳문화를 말살시키려 한 티벳과는 달리 포용정책을 통한 융화적인 정치를 도입한 곳으로 이곳의 현지인들조차 “티벳보다 더 티벳다운 곳, 티벳의 문화를 오히려 더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칸딩을 평하기도 한다.
특히 이곳 칸즈장족들은 장족들 중에서도 풍류를 좋아하고 건장하고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일행을 반기는 행사가 장족식 바에서 펼쳐졌는데 함께 한 칸즈장족자치구의 공무원부터 관계자들까지 일단 술잔을 들고 일행을 한 바퀴씩 쭉~ 돈다. 술을 따르고 술잔을 비워 상대에게 보여주고 또 옆 사람에게 가서 반갑다고 환영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친근하다.
술뿐만이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 노래와 춤 또한 빠질 수 없다. 함께 무대로 나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기쁜 시간을 함께 한다.
칸딩의 아침 풍경
다음날 아침 생각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보통 고산증세는 해발고도 3000m가 넘어서야 오는데 2600m라는 높이도 숙면에는 다소 방해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날이 단지 시작이었을 줄은 그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후 숙소가 해발고도 3000m를 넘어서면서는 새벽에 3~4번씩 깨는 것은 기본이고 머리가 아프고 띵해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 고산증세의 기본이다. 보통은 하루이틀 고생하면 적응이 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쉽사리 적응되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이른 아침 잠에서 깨, 칸딩 시내를 산책하기로 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들도 없고 조용하다. 그래도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연 식당에는 사람들이 앉아 아침식사를 즐기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국식 아침을 즐기는 사람과 티벳식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 모두를 볼 수 있다.
중국식은 작은 가게에서 만두와 국물로 먹는 방식이고 티벳식은 길거리에서 파는 티벳식 빵을 사다가 집에서 차와 함께 먹는 식이다. 맛이나 볼까 하고 빵을 하나 사서 돌아왔다. 특별한 맛이 있다기 보다 차와 함께 먹으면 담백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빵인데 그다지 부드럽지는 않지만 씹다 보면 고소하고 담백해 점차 그 맛을 즐기게 된다. 곡식재배가 어려운 티벳의 환경이 빵에서도 전해진다고나 할까? 아니면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생활방식이라고나 할까?
고산증세에 취하다
칸딩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차량이동이 시작됐다. 이제부터 차의 머리는 계속해서 하늘을 보고 달리기 시작한다. 차선도 이정표도 그리고 신호도 없는 차선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구름 속을 거치고 나가기 시작한다. 해발고도 2600m에서 출발한지라 차는 곳 3000m, 4000m를 지난다.
점차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고 힘이 들어간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보지만 가슴 속으로 유입되는 산소의 양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달리기를 한참, 이윽고 차가 저둬산 정상에 도착했다는 신호가 왔다.
차에서 내려 걸음을 옮긴다. 어! 걸음이 이상하다. 아마 우주에서 걷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물론이고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몇 걸음 걷자 이내 숨이 차 고통스럽다. 헉헉. 입을 열고 큰 숨을 내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다르쵸’가 휘날리는 산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선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참기로 한다. 해발고도 4289m에서 고통을 잘 참아내야 이번 여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다는 자기암시와 함께 과연 저 끝에선 무엇이 보일까? 하는 호기심이 더욱 배가됐기 때문이다.
구름을 지나 하늘이 있어야 할 자리엔...
그리고 그곳에서 보았다.
산을 둘러싼 구름을 뚫고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오르자, 거짓말처럼 또 다시 드넓은 산과 고원이 나타났다.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다르쵸(티벳불교의 경전이 적힌 깃발)가 이곳의 신성함을 말해준다.
구름이 지나 하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또 다시 산이 있었다.
바람이 분다. 다르쵸가 휘날린다. 또 바람이 분다. 강한 바람의 냄새가 귓가를 스치고 고원의 태양이 추위를 잊게 한다. 저 다르쵸가 품고 있는 소원들이 저 바람을 타고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을 것만 같다. 구름이 바람을 따라 흐르고 그곳에는 신기(神氣)만이 흐르는 듯하다.
★ 오직 내려가는 수밖에-고산증세 고산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한 약과 산소가 이 지역 여행에는 필수품이다. 먹는 약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사진에서 보는 약은 액체로 된 고산증세 완화약이다. 더불어 기다란 산소통도 구입할 수 있는데 실제 큰 효과를 보는 것은 어렵다. 고산증세가 심해지면 다른 방법은 없다. 그저 고도를 낮추는 일이 최선의 대안이다. 이번 여행 동안 일행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약을 먹고 산소를 마셨지만 딱히 나아졌다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증세를 다소 완화시켜 줄 뿐이다. 하지만 안 먹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여행에 지참하면 좋다. 그리고 하나 더 평소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평소에 건강하다고 해서 꼭 고산증세를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고산증세는 그만큼 평지에서는 겪기 힘든 증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가기 전에 감기 등의 증세가 있다면 역시 여행 전 감기를 떨고 가는 것이 좋다. |
평화로운 초원의 땅
가장 멋진 장족과의 하루
티벳사원의 또 다른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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