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사는 행복

삼락이야기

소금꽃 피어나는 찰나,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다

안청장 2008. 6. 18. 11:18
소금꽃 피어나는 찰나, 느림의 미학을 만끽하다
기사입력 2008-06-18 10:55 


도시는 빠름이 지배한다. 샌드위치 하나 물고 뛰듯이 걷고, 일분일초가 아까운듯 앞선 차가 주춤하면 바로 경적이 울려된다.

도시에서 빠름은 근면과 능력,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들어 느리게 사는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편의성ㆍ효율성ㆍ빠름이 잣대인 문명사회에 대한 반성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몸을 추스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자는 것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고속사회의 피난처'를 자처하며 '느리게 살자'는 구호아래 슬로시티(slowcity)운동이 시작됐다.

빠름이 성공으로 연결되는 도시(city)와 느림(slow)을 결합한 '슬로시티'는 분명 모순적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 10개국 90여개 도시가 '느리게 사는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인증받은 곳이 있다. 바로 전남 신안군 증도다.

신안군은 섬나라다. 한반도의 4198개 섬 가운데 1965개가 전남지역에 있으며 이 중 1004개가 신안에 있다.

신안의 섬들 중 일곱 번째인 증도는 '신안의 보물섬'으로 통한다. 1976년 중국 송ㆍ원나라대 유물 2만3000여점이 이곳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보물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증도는 또 다른 '보물'로 뭍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국내 최대규모의 염전과 자연이 살아 있는 개펄, 그리고 '느림의 미학' 슬로시티가 그것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새하얀 소금꽃

지난 주말 '슬로시티' 증도를 찾아 가는 발걸음이 느리다. 길이 멀어 빨리 갈래야 갈 수도 없을 뿐더러 일부러 빠르게 가고 싶지 않아서다.

증도가 빤히 건너다보이는 사옥도 지신개 선착장에서 10여분의 짧은 뱃길 끝에 증도의 버지선착장에 내렸다.

선착장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해 시선은 한 곳으로 고정된다. 바둑판 모양의 드넓은 염전과 일자로 길게 늘어선 소금창고의 행렬. 국내 최대 규모의 태평염전이다.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 구제를 위해 만들어진 염전으로 연간 1만5000여톤의 천일염을 생산해 낸다.

염전에는 따가운 햇볕을 짊어진 염부들이 고무래질로 바닥을 휘젖자 순백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태평염전에서는 지금도 전통 수작업으로 소금을 생산한다. 저수지에 가뒀던 바닷물을 염전 위로 끌어와 햇볕에 말린다. 염도가 높아진 소금물을 무릎 높이의 함수 창고에 보관했다가 다시 염전으로 꺼내 말리기를 20여차례. 20여일이 지난 후 마지막으로 고무장판이 깔린 채렴장에서 고무래질을 통해 새하얀 소금 결정을 빚어낸다.

염전 들머리에 있는 소금박물관 옆 전망대에 오르면 광활하게 펼쳐진 염전과 그 한가운데로 3km에 걸쳐 도열한 66개에 이르는 소금창고 행렬을 볼 수 있다.

판자로 얼기설기 지어 놓은 소금창고에는 수십년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6월의 염전은 고양이 손도 빌릴 정도로 바쁘다. 햇볕은 7, 8월보다 따갑지 않지만 습기가 적은데다 바람마저 적당히 불어 소금 생산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태평염전의 정구술 과장은 "소금을 만드는 바람은 오뉴월 치맛자락 슬슬 날리는 미풍"이라며 "짠맛과 쓴맛이 덜한데다 갯벌의 마그네슘 성분과 함께 송홧가루도 섞여 육젓과 마찬가지로 6월 소금이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이곳에서는 소금밭 체험도 할 수 있다. 장화를 신고 들어가 직접 고무래로 소금밭을 일궈보고, 물레방아처럼 생긴 수차도 돌려볼 수 있다.

서울에서 왔다는 김일윤씨(48)는 "옛날식 수차를 돌려가며 만들어 보는 천일염 체험이 생각보다 어렵지만 아이들이 재밌어 해 즐겁다"며 "체험한 소금을 가져갈 수 있고 현지에서 믿을 수 있는 소금을 살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늙은 염부는 드넓은 염전에서 보물을 인양하듯 보석처럼 영롱한 순백의 소금꽃을 걷어 올리고 있다.

◆청정갯벌과 짱뚱어다리가 빚어내는 보물

염전 샛길로 20여분을 가다보면 순간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 나타난다. 뻘과 모래가 섞인 국내 유일의 우전해수욕장이다.

9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해수욕장 앞바다에 알알이 떠있는 이곳은 길이 4㎞, 폭 100m의 백사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특히 모래의 질이 곱고 썰물 때 개펄이 드러나 해수욕뿐 아니라 개펄마사지 체험장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해수욕장 북쪽 끝에는 429만㎥(130만평)의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다. 이 갯벌을 가로지르며 나무와 철재로 만든 예쁜 다리가 있다. 일명 '짱뚱어다리'. 다리아래 짱뚱어가 많이 서식해 붙여진 이름이다. 말 그대로 다리 아래는 짱뚱어와 농게가 지천이다.

짱뚱어는 뻘 바닥에서 미끄러지듯 민첩하게 움직였다가 제 키보다도 높게 펄쩍 뛰는 '해괴한' 물고기. 생긴 모양새나 움직임은 '쌩뚱' 맞지만 여름철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470m 길이의 다리를 건너며 갯벌에 굽이치는 물골을 볼 수 있다. 해뜰 무렵이나 해질 무렵 물골에 비치며 반짝이는 햇살이 아름답다. 광활하게 펼쳐진 찰진 갯벌 사이로 물길이 굽이굽이 휘감고 흐르는 모습이 순천만 갯벌과 닮아 장관을 연출한다.

'슬로시티' 증도에 왔으니 느릿느릿 섬 투어에 나서보는 것도 좋다. 느림의 미학을 함께 할 도구는 자전거다.

관광객을 위해 면사무소와 짱뚱어다리, 소금박물관, 갯벌생태전시관 등에 자전거를 보관해 놓고 관광객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대부분의 구간이 구릉이 거의 없는 평지여서 자전거를 타고 느림속으로 빠져보는 맛이 좋다.

증도(신안)=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nomy.co.kr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함평분기점에서 광주ㆍ무안 간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북무안나들목을 나와 현경교차로 지나 해제반도 거쳐 사옥도의 지신개 선착장까지 간다. 지신개에서 증도 버지선착장까지 철부선이 다닌다. 문의 증도면 사무소(061)271-7504
△먹거리=초여름 증도의 별미는 병어다. 증도면소재지 고향식당(061-271-7533) 등에서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병어회ㆍ병어찜 각 2만5000원. 증도로 오가는 길에 지도의 송도어판장에 들러 저렴한 가격에 병어를 사서 인근의 횟집에서 회를 떠서 맛볼 수도 있다.
△가볼곳=신안 일대 갯벌의 생태와 자료를 전시한 갯벌생태전시관을 들러볼만 하다. 전시관 옆엔 고급 숙박시설 엘도라도 리조트가 있다. 야외수영장ㆍ해수찜질방ㆍ불가마한증막 등을 갖췄고 해안 전망도 빼어나다. 면사무소 뒷산인 산정봉에 오르면 한반도 지도를 닮은 우전해수욕장의 송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
해당화가 많이 피어 만조 때는 마치 꽃봉오리 같다는 화도섬도 좋다. 해안가에는 송ㆍ원대 해저유물 발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