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사는 행복

삼락이야기

우울하다고? 쾌활한 헬싱키를 걸어봐

안청장 2008. 5. 29. 12:05
우울하다고? 쾌활한 헬싱키를 걸어봐
기사입력 2008-05-29 09:04 |최종수정2008-05-29 09:50 기사원문보기

장 시벨리우스의 조각상이 처음 선보였을 때 헬싱키 시민들은“너무 젊은 모습이다”라며 반발했다고 한다. 스테인리스스틸 재질로 된 뒤쪽의 조각은 파이프오르간처럼 보이기도 하고북유럽의 오로라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발틱의 딸' 핀란드 헬싱키

핀란드 헬싱키 거리의 이정표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두 가지로 써있었다. 긴긴 밤의 겨울과 백야(白夜)의 여름을 번갈아 가며 맞이하는 핀란드 사람들은 '공용어쯤이야 두 개면 어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경쾌했다. 6월 3일 핀에어(Finnair)의 서울―헬싱키 직항 취항으로 핀란드가 한층 가까워진다. '발틱의 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활기차고 쾌활한 헬싱키의 화사한 여름을 만나봤다. (1유로=약 1650원(5월 27일 기준))

3번 트램 타고-시내에서 항구까지

헬싱키에서의 첫날, 이 도시의 분위기를 가장 빠르고 간편하게 익힐 수 있다는 3번 트램을 타보기로 했다. '8'자 모양으로 도시를 누비는 이 초록색 트램은 한 시간 정도 걸려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4~5분에 한 대씩 자주 오고 요금 2.20유로를 내면 한 시간 안에 몇 번이고 다시 탈 수 있다. 오전 9시쯤 시내 중앙에 있는, 핀란드에서 가장 큰 백화점 스토크만(Stockmann·Aleksanterinkatu 52) 앞에서 트램에 올라탔다.

길가의 알록달록한 꽃 가게, 식당 앞 의자에 앉아 뻐끔뻐끔 커피를 마시는 할아버지, 해 난다고 집 앞 잔디밭에 초록 비키니를 입고 나온 중년 부인을 구경하며 15분쯤 갔을까. 항구 옆에 주황색 천막들이 오밀조밀 펼쳐진 풍경이 눈에 익어 뒷문으로 부랴부랴 내렸다.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에서 주인공 사치에가 주먹밥 재료를 고르던 곳, 항구 바로 앞 '헬싱키 시장(Kauppatori)'이다. 린곤베리(lingonberry), 클라우드베리(cloudberry)같이 새콤달콤한 향이 진하게 풍겨오는 북유럽의 특이한 베리(berry·1L들이팩 하나에 약 7유로) 종류가 특히 많다.

자전거로 구석구석-시벨리우스를 찾아서

시장을 구경하다 보니 나란히 서있는 샛노란 자전거들이 게 눈에 띄었다. 시(市)에서 무료로 대여하는 자전거 보관소다. 사용 방법은 마트에서 흔히 쓰는 카트와 흡사하다. 2유로짜리 동전을 넣고 자전거를 뺀 다음 대여소 앞 지도에 표시된 영역 내에서 마음껏 타다가 26개 보관소 중 아무데나 돌려놓으면 동전이 다시 나온다. 바닥에 자전거가 그려진 전용 도로를 이용해야 하며 인도나 차도로 다니는 건 금지돼 있다. '헬싱키 도시 교통' 홈페이지(www.hkl.fi)에서 자전거 지도를 다운로드 받아 출력해 가면 편하다.

항구에서 자전거에 대한 감(感)을 몸에 익힌 후 '시벨리우스 공원(Sibeliuksen puisto·Mec helinkatu 38)'으로 향했다. 장 시벨리우스(Sibelius)는 교향시(交響詩) '핀란디아(Finlandia)'로 유명한 핀란드의 민족 작곡가다.

파이프오르간 같기도 하고 오로라 같기도 한 구불구불한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옆, 작곡가의 모습을 그려낸 은색 조각상은 얼굴 앞면이 전부다. 고인(古人)의 모습을 석고로 떠서 만든다는 데스마스크(death mask)가 연상됐다. '교향곡 하나 작곡할 때마다 하나씩 늘었다'는 눈썹 사이의 일곱 개 주름이 없는, 세상을 뜰 때보다 훨씬 젊은 모습인 것만 제외한다면.

자전거를 반납하러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돌 위가 아닌, 돌 안에 지은 반석(盤石) 교회(Temppeliaukion kirkko)에 들렀다. 이 교회는 티모·투오모 수오말라이넨(Suomalainen) 형제가 1969년 커다란 돌덩이 속에 다이나마이트를 넣어 폭파시킨 다음 천장을 구리 코일로 둘둘 감아 만들었다. 긴 나무의자에 앉으면 빗살무늬 창살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걸어서-디자인 골목 구경하기

헬싱키는 나무 구부리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이름난 건축가·디자이너 알바르 알토(Aalto)의 도시다. 헬싱키 시청사, 핀란디아 홀(공연장), 사보이 호텔… 어느 곳에 가도 알토의 흔적을 피하기가 어렵다. 스토크만 백화점 앞 보관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백화점 옆 4층짜리 '아카데미아 책방(Akateeminen kirjakauppa·Pohjoisesplanadi 39)'으로 향했다.

알토가 직접 설계해 1969년 완성한 이 책방은 천장을 높게 만들어 뚫은 다음 유리를 씌운, 지금 봐도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책방 정문의 문고리는 세로로 나란히 세 개가 붙어 있는데 제일 아래는 어린이, 가운데는 보통 체격, 위는 키 큰 사람을 위해 만들었단다. 책방 2층 '카페 알토'의 인테리어 역시 알토의 작품이다. '카모메 식당'에서 여주인공들이 애니메이션 '갓챠맨' 노래를 부르며 가사를 받아 적던 곳이기도 하다. 시금치와 모차렐라 치즈로 만든 '알토의 파이' 8.20유로.

핀란드 디자인 협회는 이 책방 부근의 100여 개 매장을 연결해 '헬싱키 디자인 지구(De sign District in Helsinki·www.design dis trict.fi)'를 조성했다. 각 매장의 주요 제품을 모아놓은 갤러리 겸 편집매장 '디자인 포럼(Design Forum·Erottajankatu 7·www. designforum.fi)'에 먼저 들르는 게 좋다. 인테리어 소품부터 핀란드 디자이너의 옷까지, 집에 돌아가서도 헬싱키에서의 하루를 떠올리게 할 물건들이 가득하다. 피오르드의 구불구불한 해안을 본떠 만들었다는 유명한 '알토의 병(Aalto Vase)' 43유로. 여기서 나온 다음부터는 핀란드 국기를 닮은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발길 닿는 대로, 헬싱키의 골목골목을 누비면 된다. 

[헬싱키=글·사진 김신영 기자 s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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