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는 30분 일찍, 마감은 30분 늦게’가 회생의 ‘묘약’
병든 병원 고치는 의사,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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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 의대 신입생 환자체험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의대 신입생 50명을 대상으로 한 체험 연수 프로그램이다. 김씨 등 18명이 속한 1개 조가 명지병원에서 ‘환자 체험’을 하는 동안 나머지 2개 조는 각각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보호자 체험과 인천 영락요양원에서 무의탁 노인 간병 봉사 체험을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실시 중인 관동대 의대 의료원장 이왕준(46·명지병원 이사장)씨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학과 의술을 배우기에 앞서 ‘참의사’의 길이 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2년 6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한국 의료계의 반성과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의료 소식지 ‘청년의사’를 창간했다. 98년 외환위기 때 부도난 병원을 인수해 10년 만에 매출액을 5배로 키웠다. 지난해 7월에는 대기업과 대형병원을 제치고 연평균 7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대학병원(명지병원)을 인수해 매출액과 환자 수를 늘리고 있다. 1월에는 뇌사자의 장기적출과 이식이 모두 가능한 뇌사자판정대상자관리전문기관(HOPO)으로 지정됐다. 9일 명지병원 집무실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경영비결과 미래 비전을 얘기했다.
-병원 경영이 얼마나 좋아졌나.
“지난해 7월 1일부터 병원 경영을 시작했다. 이전 실적과 비교를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7~11월 외래환자로 발생한 수입은 120억9000여만원이었다. 전년 같은 기간 91억1100만원이었던 데서 32.7%가 증가했다. 환자 수는 15만7600명이던 것이 19만500명으로 21% 늘었다. 지난해 7~11월 입원환자로 인한 수입은 200억8200만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은 193억원이었다. 환자 수는 6829명에서 7267명으로 늘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외래 수익보다 입원 수익이 큰 폭으로 늘었다. 입원 수익이 1월 46억원, 2월 43억원이었다. 지난해 1월 39억원보다는 16.7%, 2월 34억원보다는 25.6%가 늘어난 수치다. 반면 외래 수익은 3~4% 증가에 그쳤다.”
-병원 인수 8개월여 만에 수익을 늘린 비결이 있다면.
“처음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한 달 안에 이곳 의사 105명 전원을 개별 면담했다. 그룹 미팅도 했다. 대화를 통해 향후 비전을 설명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뭔가.
“‘환자제일주의’를 내걸었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자고 설득했다. 외래 진료는 30분 일찍 시작하고 원무 수납은 30분 늦게 마감했다. 전 직원을 상대로 서비스 교육을 실시했고 병원 내 소통을 위해 소식지 4가지를 발간했다. 근무 시간에 딴짓 하지 말고, 환자들에게 검사 한번 더 해주고, 설명도 자세히 해 주라고 독려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입·퇴원고객지원센터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이 입원하기 전에 받는 채혈 등 각종 검사를 한 장소에서 한다. 퇴원 수속도 환자가 병상에 앉아서 다 한다. 짐까지 날라준다.”
-변화를 실감한 사례가 있었나.
“지난해 신종 플루가 극성을 부릴 때 우리 병원이 전국에서 가장 빨리 신종 플루 진료센터를 설치했다. 새벽 3~4시대에 찾아오는 환자도 치료케 했다. 환자가 찾아오면 고마워 할 일 아닌가. 처음에는 의사와 직원들이 야근 때문에 힘들어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 몇 명 왔느냐” “내원 환자 기록이 깨졌느냐”고 묻는 등 기록 경신이 화제가 됐다. 직원들 마음에 자신감이 보였다.”
-구조조정도 했나.
“구조조정은 숫자를 줄이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사 20명이 나갔지만 25명이 새로 들어왔다. 발전하는 병원에 의사는 더 필요하다. 나는 똑같은 숫자의 의료진과 병원 시설을 갖고 3배 이상 생산성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대형 화이트 보드 놓고 일일 실적 관리
그의 집무실 벽 한쪽에는 대형 화이트 보드 2개가 병풍처럼 걸려 있었다. 한쪽은 ‘주간종합 현황’, 다른 쪽은 ‘일일환자 현황’이란 제목이 보였다. 여기에는 병원 전체 진료과의 매출액과 이익, 환자 수가 매일매일 업데이트된다.
-전산으로 경영 관리가 가능할 텐데 굳이 화이트 보드를 쓰는 이유는.
“‘보험회사 영업관리 방식’이다. 실적을 아날로그적으로 정리하면 한눈에 들어온다. 내 방에 들어오는 각 과 책임자에게는 압박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 이사장을 ‘병원 고치는 의사’라고 한다.
“98년 의사 자격을 따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34세 때 남들처럼 개업하지 않고 종합병원을 인수한 것은 ‘청년의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좋은 병원’과 ‘이익 내는 병원’을 동시에 추구했다. 그 도전은 성공했다. 인천사랑병원은 개원 당시 의사 9명으로 시작해 현재 의사 60명에 400병상, 지난해 매출액 367억원으로 커졌다. 최근 8개월여간 다시 명지병원을 운영하며 얻은 결론 역시 병원 시스템을 환자 중심으로 바꾸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 병원이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환자를 치료하는 일상적 기능에서 벗어나 그 지역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의료와 복지 개념을 통합하는 것이다. 병원 로비에서 가끔 음악회를 여는데 열린음악회가 아닌 전국노래자랑 형식이다. 의사도, 환자도 자유롭게 참여한다.”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을 어떻게 생각하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이유가 없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더라도 전체 병원 산업의 10~15%를 차지하는 데 그칠 것이다. 이를 허용하되 비영리법인들에 대한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병원 설립의 주체가 아니라 그 역할과 기능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목표는.
“관동대 의대는 수능점수로 보면 전국 41개 대학병원 가운데 37위다. (협력병원의 의료원장으로) 10년 안에 10등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IQ가 아니라 EQ(감성지수), SQ(사회지수), MQ(도덕지수)가 높은 품성이 좋은 의사를 키워야 한다. ‘청년의사’를 창간한 지 어느덧 18년이 흘렀고 나는 이제 ‘중년의사’가 됐다. 하지만 난 여전히 ‘청년의사’다. 도전 정신과 개혁 마인드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얘기다.”